신입 회계사에게만 고강도 노동이 몰리는 것이 감사 품질 저하의 원인

대형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연차가 낮은 회계사 일수록 하루 15시간, 한 주 80시간 이상의 고강도 노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청년공인회계사회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하 사무금융노조)은 내년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주 40시간+연장 12시간) 본격 시행에 앞서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노출된 회계사의 노동 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조사는 지난 11월 19일부터 26일까지 진행했으며 해당 설문에는 600명이 참여했다. 이는 올해 8월 말 기준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회계사 10,673명중 5.6%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노동 강도가 높은 빅4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의 회계사(5,069명)와 비교하면 11.9%가 조사에 응답했다.

“몇 시간 야근을 하든 10시간을 초과해서 입력한 적이 없다.”

설문에 응답한 회계사의 31.8%는 기업의 감사 보고서(1~3월)와 반기 검토 보고서(7~8월) 업무가 몰리는 시기에 하루 평균 15시간 일한다고 답했다. 이어 12시간이 52.7%, 10시간이 13.7%, 8시간이 1.8%를 각각 기록했다.

회계법인 규모별로는 빅4의 노동 강도가 가장 심했다. 빅4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회계사들이 업무 성수기 때 15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비율은 32.0%에 달했다. 이들 중 12시간 일한다고 답한 비율은 53.1%였으며 이어 10시간 13.1%, 8시간 1.8%를 각각 기록했다.

빅4를 제외한 50인 이상 회계법인에 일하는 회계사의 경우 업무 성수기 때 15시간 이상 노동하는 비율은 31.6%, 12시간 57.9%, 10시간 10.5%로 각각 조사됐다. 50인 미만 회계법인의 회계사가 업무 성수기 때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비율은 27.8%였으며 이어 12시간 27.8%, 10시간 38.9%, 8시간 5.6% 순이었다.

직급별로는 회계법인에 입사한 3~5년차에 해당하는 시니어 직급의 노동 강도가 가장 높았다. 시니어 직급의 경우 업무 성수기 때 하루 15시간 일한다는 비율이 39.4%에 달했으며, 12시간 이상 53.5%, 10시간 6.6%, 8시간 0.4% 순이었다. 입사 1~2년차인 주니어가 성수기 때 15시간 이상 답한다고 한 비율은 34.2%였으며 12시간 51.3%, 10시간 13.8%, 8시간 0.7% 순이었다.

매니저(입사 6~8년차)의 업무 성수기 일 평균 노동시간은 26.1%(15시간 이상), 58.0%(12시간), 15.2%(10시간), 0.7%(8시간)를 각각 기록했다. 같은 시간 기준 시니어매니저(9~11년차) 역시20.8%(15시간 이상), 42.9%(12시간), 32.5%(10시간), 3.9%(8시간)의 수치를 보여줬다. 주니어부터 시니어매니저까지 모두 노동 강도가 높지만 상대적으로 주니어, 시니어의 노동 시간이 길었다.

“야근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 근태 불이익 주려는 사람 많다”

설문에 참여한 회계사들 중 업무 성수기 때 한 주 평균 노동시간이 100시간을 초과하는 비율은 16.0%에 달했다. 노동시간대별 답변 비율은 80시간 초과~100시간 이하는 39.7%, 64시간 초과~80시간 이하 26.2%, 52시간 초과~64시간 이하 16.0%, 52시간 이하 2.2%를 각각 기록했다.

이를 종합하면 업무 성수기 때 한 주 평균 법정 노동 한도 시간인 주 64시간(52시간+휴일 1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회계사 비율은 81.9%에 달했다. 한 주 평균 80시간을 초과해 노동하는 비율은 55.7%다. 회계사의 업무 성수기가 매년 1~3월, 7~8월인 것을 고려하면 대형 회계법인에 다니는, 직급이 낮은 회계사일수록 일 년 중 네다섯 달은 법정 근로시간을 넘기면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탄력적 근로기간제가 현행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나도 회계법인은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할 수 있다.

회계법인 회계사들이 업무 비수기 노동 강도는 업무 성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주 52시간 초과 근무하는 비율이 39.4%를 기록하며 여전히 고된 노동을 보여줬다.

"유연근무제 무력화 시도할 것, 회사 정책 못 믿어”

회계사들은 노동 환경과 관련해서는 생활하는데 적당하지 않으며 내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돼도 지금과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인식했다.

설문에 참여한 회계사 중 83.3%는 현재 근무시간이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적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유연근무제 시행 후 회사가 제시하는 대체 휴무 등의 정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94.5%에 달했다.

유연근무제 시행 이후 포괄임금제에 대한 변화와 관련한 질문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 62.5%로 답변 비율이 가장 높았다. 탄력적 근로기간제의 단위 확대가 노동 강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 역시 ‘변화없다’(48.5%) 답변이 가장 많았다. 52시간 근무제를 회사가 어겼을 때 어떤 처벌을 받는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36.8%만 ‘알고 있다’고 답해 과반을 넘지 못했다.

회계법인 노동자의 실태와 관련한 주관식 답변에는 109개의 의견이 모였다.

<유연근무제 관련>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면 12월 말 결산 법인은 다행이지만 3월, 9월 기말은 감사는 많고 용역도 많아 다 죽으라는 얘기이다.”

“회계사는 업종 특성상 유연근무제가 필요하다. 다만 고된 시즌이 지난 후 비시즌에는 휴가나 금전 보상이 이뤄져야 감사 부서 이탈을 막을 수 있을 것.”

“탄력근로제를 1년으로 늘리면 회계법인의 편법이 늘어날 것이다.”

“유연근무제 시행에 따른 초과 시간 기록과 보상을 철저히 관리 시행해야 한다. 회계법인 파트너들은 무언의 압박과 회유 및 분위기 조성으로 유연근무제 무력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주 52시간 관련>

“주 52시간을 지키지 않은 채 타임시트만 적정 시간을 작성하라고 강요한다.”

“일한 시간 그대로 타임리포트에 쓸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몇 시간 야근을 하든 10시간을 초과해서 올린 적이 없다.”

“대형 회계법인에 다니지만 탄력 근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주 52시간 이상 일하지만 갖은 압박으로 그 이상 입력할 수 없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임금과 근무시간 관련>

“일정 시간 이상 근무 시에는 추가로 일을 맡는 것을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회계사의 재량근로제는 찬성하나 정당한 절차와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포괄임금제는 없애고 추가 수당제로 해야 한다.”

“52시간이 지켜지기 어려운 직업으로 초과 근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야근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고 뒤로는 근태 관리해서 불이익 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무리 감사 열심히 해도 클라이언트 입맛에 맞춰 보고서 찍어내려는 사람이 많은 것도 문제다.”

이밖에 회계업계에서는 회계사의 증원보다는 감사 업무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감사 품질을 높이는 대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저비용의 연차가 낮은 회계사만 늘리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개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강도 업무가 낮은 연차의 회계사에만 몰리면 회계사가 감사 업무에서 이탈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올해 8월 말 기준 공인회계사 2만138명 중 회계법인에서 일하지 않는 휴업 회계사는 7287명으로 전체의 36.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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