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 출신 독립운동가인 죽산 조봉암(曺奉岩. 1898.9.25.~1959.7.31.) 선생의 서거 60주기 추모제가 죽산 조봉암 선생기념사업회와  竹山 曺奉岩 선생 유족회 주최로 죽산 선생의 유족들과 창녕조씨 대종회(회장 조주환)를 비롯하여 박남춘 인천시장, 송영길 의원, 박찬대 의원, 이원규 조봉암 평전 작가와 죽산 선생을 기리는 시민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1일 오전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 묘지에서 열렸다.

아침부터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곽정근 기념사업회 회장은 “죽산은 조국의 독립과 분단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 모두 행복하고 평등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한반도를 만드는 데 일생을 바쳤다”며 “선생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는 데 이제라도 다 함께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이부영 기념사업회 이사장도 추도사에서 “당장 평화통일이 안 되더라도 초조해하지 않고 화해와 교류를 하며 인내하다 보면 조 선생이 목숨을 바쳐 이루려 했던 평화통일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농민이 떠나고 농촌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제2의 농지개혁’ 외엔 대안이 없다”며 “다시 죽산 선생을 불러 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竹山 曺奉岩 선생은 1898년 9월 25일 강화군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성 YCMA 중학부에서 1년 학습했고, 3.1 운동에 참여하여 1년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내부 갈등에 회의를 느껴 일본으로 가서 주오대학 전문부를 다니다 중퇴했다.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무정부주의에 심취하기도 했고, 이어 사회주의 계열 단체에 참가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竹山 曺奉岩  선생은 항일 운동을 벌이다가 1932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7년간 옥고를 치렀다.

 竹山 曺奉岩 선생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활동했고,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과 결별하고 전향한 뒤 5·10 총선거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돼 헌법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초대 내각에서 농림부 장관을 맡아 농지개혁을 추진하는 등 업적을 남겼다.

그는 2대 국회 부의장을 지낸 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과 접전 끝에 낙선한 竹山 曺奉岩  선생은 1957년 진보당을 창당하고 위원장에 선임됐다.

그러나 다음해인 1958년 간첩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진보당원 16명과 함께 검거됐다.

재판에 넘겨진  竹山 曺奉岩 선생은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지만 2심과 3심에서 각각 사형을 선고 받았다. 1959년 재심 청구가 기각되면서 사형이 집행됐다.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竹山 曺奉岩 선생이 연루된 진보당 사건을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적 정치탄압으로 결론 짓고 국가의 유가족에 대한 사과, 독립유공자 인정, 판결에 대한 재심 등을 권고했다.

결국 지난 2011년 1월 열린 재심에서 대법원은 국가변란목적 단체결성, 간첩 등 혐의에 대해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했으며 그의 죽음은 우리나라 헌정사상 첫 사법 살인으로 기록됐다.

복지국가와 남북 간 평화적 통일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죽산이 돌아가신 지 60년이 지난 오늘, 죽산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竹山 曺奉岩 선생님의 사상은 한국에 온건 사회민주주의 노선의 토대를 놓은 것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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