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안현준취재팀장] 기사는 최소한의 기자의 자존심이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말한다.

1980년대 정권에 의해서 기사가 검열되고, 보도지침이 내려지던 그때.

기자들은 기사를 쓸 자유를 빼앗겼고, 국민들은 최소한의 정보를 알아야되는 최소한의 자유를 빼앗겼다.

이후 일부 기자들은 보도지침을 거부하고 이한열 열사에 대해 보도했고, 그게 발화점에 되어서 6.10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넥타이 부대 등 학생, 노동자, 셀러리맨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의 마음속에서 민주주의 열망이 타올랐고, 정권이 변했으며 민주주의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기사를 썼다고 해서,  갑자기 전화를 해 ‘고소’를 운운하는 행위

1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마구잡이로 쥐어 준 채 무조건 ‘고소’하겠다는 그 한마디에

기사를 쓴 기자는 자괴감을 느꼈고, 데스크는 이런 현실을 막지 못했다는 것에 절망했다.

그리고 다시 맘을 굳게 다잡았다.

데스크는 최소한의 방패막이다.

기자들을 보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들이 올바른 정보를 알게 해줄 수 있는 방패막이다.

‘고소’를 운운하며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알권리를 빼앗으려는 행위는 최악의 행위이며

이에 대해 다시 한 번 분개한다.

또한 청년투데이 데스크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이자, ‘올바른 정의’라고 생각된다.

청년투데이는 고소 고발에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기자는 기사로 말할 것이고

팩트가 있는 기사로 말할 것이다.

데스크는 그런 기자들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민주주의 가치인 알 권리를 위한 

방패막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1시간도 안되는 시간 속에서 ‘고소’를 운운하며, 기사를 내리라는 말은 명백한 협박이다.

그리고  반론권을 듣겠다고 고지를 했음에도  다시 ‘고소’를 운운하는 것은

협박의 수준을 넘어 위협의 수준이다.

이러한 일부 출입처의 행태에 분개하며 데스크 칼럼을 작성한다.

이 데스크 칼럼을 작성할 때까지 수 많은 고뇌의 시간이 필요했다.

수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청년투데이의 독자는 그 일부 출입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청년들이다.

‘고소’가 무섭다고 해서 또는 두렵다고 해서 ‘청년들의 알권리’를 포기하지도 방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 신념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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