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위기의 한국경제, 금융개혁만이 살 길이다
 
박근혜 정부 경제혁신 3개년계획, 최경환 노믹스도 금융권에는 무용
 
금융사 경영진, 금융관료 퇴출부터 시스템 구조조정까지 대수술 절실
 
 
복마전(伏魔殿)이 따로 없다. 대한민국 금융계가 보신주의와 도덕적 해이 속에 구제불능의 사고뭉치, 악덕업자의 소굴이 되었다.
 
지난해 동양증권 사태에 이어 올해 초 1억 건에 달하는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과 대출금리 조작, 부실대출, 보이스 피싱,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내부 직원 사기·횡령 등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5대 금융지주사들이 이해당사자간 소송분쟁에 휩싸여 있는가 하면, 금융권에 대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신청도 매년 크게 늘고 있고, 여기에 금융기관의 채권추심이나 구상금 관련 소송까지 넘쳐나고 있다.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사태는 금융업 전체를 위축시키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아 영세기업과 자영업이 몰락하고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민들이 파탄지경에 이르렀건만, 금융사 경영진과 금융관료들은 도의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중소·벤처기업 대출회피의 보신주의와 예대마진 이자놀음의 탐욕에 빠진 채, 자기들만의 돈잔치를 벌이며 모럴해저드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나라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올해 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았지만 금융권에는 소 귀에 경 읽기였고, 하반기 들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제2기 경제팀이 ‘경제정책방향’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별무신통이다.
 
급기야 박 대통령이 경제장관회의석상에서 잇따라 금융권 보신주의 타파와 창조금융 실천을 주문하자, 엊그제 ‘창조금융 활성화를 위한 금융혁신 실천계획’까지 내놨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신용과 도의를 저버린 금융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폭발직전에 다다랐을 정도로 동맥경화에 협심증까지 심각한 합병증에 걸린 금융계, 대수술이 시급하고도 절박한 이유다.
 
끊임없는 사건사고 ′금융권 신뢰 상실의 시대′
 
사건일지를 들춰 보자. 1월부터 사건이 터졌다. 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 등 3개사에서 1억건에 달하는 고객의 신용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경찰에 의해 발각됐다. 용역으로 파견된 코리아크레딧뷰로(KCB)로 직원이 2012년 10월~2013년 12월 기간 중 카드회원의 개인(신용)정보를 빼돌려 대출중개업자에 팔았다.
금융위원회는 해당 카드사가 관련법상 회원의 정보보호 소홀, 외부유출 방지의무, 내부통제절차 등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고 3개월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해당 카드사의 CEO(최고경영자)는 사태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고 금융감독당국은 금융권 재취업도 어렵게 중징계를 내렸다.
정보 유출에는 고도의 해킹 기술이 아닌 컴퓨터를 조금만 할 줄 안다면 가능했던 것으로 밝혀지자 소비자의 분노는 더 컸다. 2월 18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개최한 개인정보 대량유출 관련 실태조사 및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검찰에 구속기소 된 KCB 전 직원 박모씨는 정보유출이 뜻밖에 쉬웠다고 말했다.
박씨는 범행 과정을 묻는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의 질의에 “윈도우를 새로 설치하는 등 포맷으로 유출했다” “윈도우 설치야 누구나 조금만 지식이 있으면 할 수 있다” “데이터가 있고 불손한 생각을 했다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 의원이 “해커가 아니더라도, 소위 컴퓨터를 좀 한다면 가능하다는 뜻이냐”고 묻자 박씨는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고 답했다.
신용정보 유출 사건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주요은행의 도쿄지점에 부당대출 사건이 잇따라 발각됐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까지 도쿄지점에서 6000억원에 가까운 부당대출이 있었다. 검찰 조사결과 국민은행 이 모 전 도쿄지점장과 안 모 전 부지점장은 리베이트를 받고 대출해줬다. 일각에서는 비자금으로 조성해 로비 자금으로 활용했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나왔다.
우리은행도 비슷한 대출이 있었고 의혹을 받은 지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는데, 이 같은 굵직한 사건 말고도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다.
KB금융지주는 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대립하며 그룹 내 혼란을 불렀고 은행 직원이 국민주택채권 90억원 횡령, 1조원대 가짜 확인서 발급, 보증부 대출 부당이자 환급액 허위 보고 등으로 120명이 금융감독원의 징계 통보를 받았다.
신한은행은 불법 계좌 조회로 제재를 받는다. 금감원은 정치인 계좌 불법 조회 혐의와 관련해 2010년 4월부터 9월까지 신한은행 경영감사부와 검사부가 조회한 150만건에 대한 전수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 내부 직원이 가족 계좌를 수백 건씩 무단 조회한 사실이 적발됐다.
우리은행은 양재동 복합물류개발 프로젝트인 ‘파이시티 사업’ 신탁상품 판매 과정에서 기초 서류 미비 등이 적발돼 징계를 받는다. 상품을 파는 과정에서 일부 기초 서류가 미흡해 고객의 오해를 가져올 소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1억여건의 고객 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카드 3사의 경우 전·현직 최고경영자는 해임 권고 또는 직무 정지 수준의 중징계가 내려지고 나머지 임직원들은 최대 문책 경고 등을 받는다. 대상자만 100명에 육박한다.
13만여건의 고객 정보를 유출한 한국SC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의 임직원 수십명도 징계를 받는다. 고객의 대출정보를 대출모집인들에게 유출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한국씨티은행 전 직원과 한국SC은행 외주업체 직원은 징역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부정적 인식에 기름 끼얹고 경제에도 악영향
 
사건도 많았지만 감독기관의 징계도 유독 많았던 것은 금융회사를 바라보는 사회의 분위기가 여느 때보다 악화한 결과다. 원래 금융산업을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를 이용한 손쉽게 돈을 버는 업종, 부실이 발생하면 사회에 떠넘긴다는 게 사회적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회사 스스로 사건사고를 일으키자 여론이 더욱 악화된 것이다. 결국 금융감독당국이 징계의 칼을 더욱 강하게 휘두를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부정적 인식+부당대출 등 사건 사고=금융전반 신뢰 급락’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 관계자는 “동양사태에서 보듯 일단 사건이 터지고 사회 분위기가 악화하면 당국은 우선 수습하기 위해 금융회사를 강하게 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신뢰상실은 비단 금융산업에만 문제가 그치지 않고 경제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소비자는 금융거래를 피하고, 금융회사는 서비스 제공을 줄이고 결국 경제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부원장은 “금융회사 임직원은 금융회사가 사기업이지만 공공성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내부통제 강화로 금융사고를 미리 예방해야 한다”면서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투명한 금융상품 가격결정 체계를 정립하고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떻든 한국 금융이 사고를 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엄청난 대형사고가 등장한다. 가장 큰 사고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라 불리는 1997년 금융위기일 것이다. 1997년 위기는 수많은 금융기관과 기업의 도산, 어마어마한 국부 유출, 급격한 실업 증가와 가정해체 등을 초래한 사건이다. 200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 투입과 직원 40% 정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기관 경영진은 고액 연봉자가 됐고, IMF 사태를 초래한 관료들은 승승장구했다.
2002년에는 신용있는 사람에게 발급해야 할 신용카드를 길거리에서 마구 발급하여 경제활동 인구의 4분의 1 정도인 390만여명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이어 소액 서민금융을 담당해야 할 상호저축은행이 정책당국의 방조로 거액 부동산PF 대출을 하다가 부실화되어 국민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한국경제의 잠재적 불안요인인 ‘하우스 푸어(부채가 많은 주택 보유자)’ 문제도 금융기관의 보수적이고도 무분별한 영업과 정책실패 때문이다.
 
 
금융관료·금융사 경영진 등 주범 퇴출부터
 
금융계가 본래 이리 나쁘고 문제만 일으키는 것일까? 아마 모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금융은 돈이 없어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거나 키우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자금융통 기능이 있다. 교통 통신과 같은 사회 인프라의 하나로 국민의 경제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지급결제 기능도 수행한다. 또한 금융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괜찮은 일자리까지 제공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영세업자, 창업자 등이 담보나 보증 없이 대출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지급결제는 빠를지 몰라도 불안하다. 일자리 창출은 더 형편없다. 은행, 증권사, 신협, 새마을금고의 직원을 다 합해도 한국은 20만 명이 안 된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인구가 8000만여 명인데 은행원 수는 70만 명에 이른다. 한국의 은행원이 인구 대비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괜찮은 일자리가 적어도 20만개는 더 생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금융기관 경영진과 이른바 모피아로 불리는 금융관료들은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다. 금융기관 경영진 연봉은 10억원이 넘는 경우도 많다. 금융관료도 은행장, 감사, 협회장 등에 낙하산으로 가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한국의 금융기관 경영이 그렇게 많은 보수를 받아야 할 정도로 일이 어렵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일까?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금융기관은 해외에서 경쟁력이 전혀 없다. 그저 국내에서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등의 영업만 열심히 할 뿐이다. 한국 금융기관의 경영진은 경제신문을 읽고, 영어 좀 할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러기에 관료, 교수, 관변 학자 등이 너도 나도 정치권에 줄을 대서 은행장, 지주회사 회장 등을 하고 있는 것이다.
퇴임 관료가 많이 가는 은행연합회 등 협회장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들 협회도 단지 요식업협회나 목욕탕협회 등과 같은 이익단체일 뿐인데 협회장은 후배들을 접대나 하면서 어마어마한 거액의 보수를 챙긴다. 이 돈은 모두 금융소비자 다시 말해,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서 나온 것이다.
한국 금융은 자금융통, 일자리 창출 등 제 역할을 못하면서 경영진과 관료의 꿀단지 노릇만 해 왔다. 이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지금까지 한국 금융을 주물러온 금융관료에게 있고, 문제 해결도 이들을 내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야 마땅하다.
금융관료는 전문성을 내세우며 항변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낙후성과 국민이 받고 있는 고통을 생각할 때 어떤 전문성인지 묻고 싶다. 단언컨대, 경제신문을 읽을 수 있는 정도의 경제지식이 있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 중에서 그 누가 맡아 해도 지금보다는 잘할 것이다.
 
 
금융개혁을 위한 전문가들의 대안 제시
 
IMF 외환위기, 카드사태, 론스타 사건, 저축은행 사태, 개인정보 유출 사태 등의 주범인 금융관료는 당연히 퇴출돼야 하지만, 이들이 없다고 금융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낙후된 금융시스템을 개선시킬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높은 대안이 있어야 한다.
 
한국 금융은 자금중개 기능, 일자리 창출, 실물부문 지원 등의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전반적인 금융시스템의 구조조정 등 일대 혁신이 불가피하다. 금융개혁을 전제로 한 대안이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제시하자면 이렇다.
 
먼저 신협,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 활성화시켜야 한다. 한국에서 창업자, 영세사업자, 저신용자 등은 담보나 보증 없이 대출받기가 아주 어렵다. 여기에는 한국사회 전반의 정직성과 신뢰성 부족이 큰 원인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신협 등 서민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신협과 새마을금고에 대해서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되는 기관으로 보고 경쟁력 강화나 서민금융 확충에 대한 정책적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상호저축은행은 서민금융과 거리가 먼 부동산 PF대출을 조장하여 부실화시켰다.
 
이렇게 서민금융기관들이 위축되면서 재벌기업, 우량 중소기업, 좋은 직장 있는 사람 등을 제외하고는 제도권 대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에다 2012년 도입된 협동조합도 금융·보험업은 허용되지 않아 시민들이 자조적 금융기관을 새로 만들 수도 없다.
 
기존 신협과 새마을금고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독일 협동조합은행 등의 사례를 살펴보면 방안이 있다. 금융당국은 서민금융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으로 은행 신규 설립을 단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한국은 1992년 이후 현재까지 20년 넘게 은행 설립이 전혀 없고 인수·합병 등을 통한 퇴출만 있었다. 선진국 중에서 이런 경우는 없을 것이다. 어떤 산업에서건 신규 진입이 없으면 제대로 된 경쟁도 없는 것이다.
 
한국의 은행산업은 겉으로는 경쟁이 치열해 보이지만 실제는 몇 안 되는 은행이 시장을 적당히 나누어 갖는 구조이다. 즉, 은행들은 국내에서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영업만 잘해도 고수익을 낼 수 있어 국제화 등 어려운 일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치킨집도 국내에서 경쟁이 치열해 해외로 나가는 것에 비해 한국의 은행은 너무 편하게 장사를 한다.
 
은행 설립 허용에 대한 가장 큰 반대는 은행이 늘면 망하는 은행이 생겨 금융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처럼 은행의 수는 적어지고 덩치만 커지면 나라경제는 더 위험해진다.
 
은행이 크다고 더 안전한 것은 전혀 아니고, 큰 은행이 망했을 때의 충격은 더 크기 때문이다. 만약 1990년대 초까지 신한·한미·하나은행 등이 신규 설립되지 않았다면, 1997년 금융위기로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이 망했을 때 국내 인수기관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로운 은행이 생겨야 기존 은행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금융위기 시 구조조정도 쉬워진다. 지방은행, 인터넷은행 등을 시작으로 은행 설립을 조금씩 허용해 나가면 생각만큼 불안하지 않고 괜찮은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형적인 금융감독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한국의 금융감독은 중요 업무는 금융위원회가, 실무업무는 금융감독원에서 담당하는 이원화된 구조이다. 양 기관은 권한 다툼을 통해 이권을 나누어 갖고, 책임은 서로 미루기 딱 좋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은행, 보험, 금융지주회사 등 영역이나 기관별로 감독기관이 나누어진 경우는 있어도 업무 중요도에 따라 나누어지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우선 금융위와 금감원을 단일조직으로 통합하여 책임성을 높이고, 금융정책 등의 기능은 떼어내어 핵심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새 감독기관은 금융관료와 금융기관 경영진보다는 국민의 이익을 위한 중립적 기관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금융감독 기관이 생겨나면 서민금융 활성화, 금융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금융개혁도 보다 쉽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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