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수료'라고 말하나?
당장에라도 인출할 수 있는 예금이 당좌예금

[월간 금융계 / 양학섭 편집국장]

 

 

 수수료와 당좌예금
 

 

이번 호에서는 은행원들이 자주 쓰는 용어 몇 개의 본디 뜻을 한 번 찾아보았다. 너무 자주 사용하고 또 너무 익숙한 낱말이어서 원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

이 경 엽
현) 한국산업은행 자금결제실장
1958년 경북 감포
대구상업고등학교/건국대 경영학과
일본 게이오대학 상학 석사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1977년 한국산업은행
도쿄지점 과장/방카슈랑스사업단장
구미지점장
은행 영업점에 가면 어디에나 커다란 설치 금고가 있다. 붙박이금고라 할 수도 있고, 벽 금고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을 은행에서는 전통적으로 ‘조부금고’라 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은행에는 아직도 이 말을 사용하는 직원들이 가끔 있다. 그래서 직원들이 ‘조부금고’란 말이 든 문서를 기안해서 결재를 올리면 꼭 물어본다. 조부금고가 무슨 말이냐고? 그러나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조부금고(造付金庫)는 일본식 용어다. ‘조부’는 “만들어(造) 붙였다(付)”는 뜻이다. 이제는 버려도 될 낱말이다. 아니, 벌써 버렸어야 할 낱말이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에 은행에서 자주 사용하던 말 중에 ‘양건예금’이란 것이 있다. 양건예금은 구속성예금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국어사전에 보니 ‘꺾기’라고 한다. 꺾기는 은행에서 어음할인이나 대출을 해 줄 때, 융자금액의 일부 또는 일정 비율을 강제적으로 예금하게 하는 일이다. 구속성예금(拘束性預金)은 좀 알만한데 ‘양건예금’이란 말은 무슨 뜻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양건(兩建)은 “두 곳(兩)에 세웠다(建)”는 뜻이다. 즉, 두 개의 과목(계정과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개의 과목은 대출과목과 예금과목을 가리킨다. 대출을 받고(또는 대출을 해 주고) 예금을 하는(또는 예금을 받는) 거래를 함께 하여 두 개의 계정과목을 동시에 발생시키는 것이 ‘양건거래’이며, 그 중에서 예금과목으로 발생하는 것이 ‘양건예금’이 되는 것이다.

수수료는 어떤 일을 맡아 처리해 준데 대한 보수다. 일상생활에서 너무 자주 쓰는 말이어서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또 글자의 뜻이 무엇인지 지나치기 쉽지만, 수수료(手數料)는 ‘수수’에 따른 요금이란 뜻이다. 국어사전에 ‘수수(手數)’란 낱말은 나오지 않지만, 뜻을 풀면 ‘손을 움직인 횟수’라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처리하는데 손을 몇 번 사용하였는가, 곧 품이 얼마나 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간단한 일은 손을 적게 쓰고 처리할 수 있을 것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손을 많이 써야 처리할 수 있다. 이처럼 손을 사용한 횟수, 다시 말하면 인건비에 해당하는 요금이 수수료다.

은행을 이용하다보면 여러 가지 항목의 ‘수수료’를 부담하는 경우가 있다. 창구이용수수료, 자동화기기이용수수료, 인터넷뱅킹이용수수료, 모바일뱅킹이용수수료 등등.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창구이용수수료 외에는 수수료가 아니다. 자동화기기나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을 직접 손을 써서 조작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창구 텔러가 아니라 고객이다. 수수료의 본래 뜻에 따르면 고객이 오히려 수수료를 은행에서 받아야 할 판이다. 따라서 ‘자동화기기이용수수료’가 아니라 ‘자동화기기사용료’나 ‘자동화기기이용료’가 맞다. 마찬가지로 인터넷뱅킹이용료, 모바일뱅킹이용료라고 하는 것이 맞다. 手數란 말뜻을 놓치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차관을 도입 한다”거나 “차관을 제공 한다”고 할 때, ‘차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차관(借款)은 국제간에, 일정한 협정에 따라 자금을 빌려 주고 빌려 쓰는 것이다. 여기에서 ‘차(借)’는 빌리거나 빌려준다는 뜻이다. 차용․차입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면 ‘관(款)’은 무슨 뜻일까? ‘관’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정성․성실이란 뜻이 있는가 하면, 솥․종․제기 등에 새긴 글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서화에 찍는 인장인 ‘낙관(落款)’이란 말 속에도 들어간다.

차관의 ‘관’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돈․경비를 뜻한다. 따라서 ‘차관’은 돈을 빌린다는 뜻이다. 둘째, 참된 것․신용을 뜻한다. 이때의 ‘차관’은 신용을 빌린다는 뜻이다. 어느 해석이 맞는지, 아니면 둘 다 맞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전마다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니 원문에 ‘차관’이란 말이 모두 17회 나오는데, 고종실록에 15회, 순종실록에 2회 나온다. 근대에 들어와서 사용된 말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려운 낱말 하나를 더 살펴보자. 당좌예금이다. 예금은 그 명칭을 보면 대체로 어떤 예금인지 알 수 있는데, 당좌예금(當座預金)의 ‘당좌’란 말이 좀 어렵다. 당좌란 ‘그 자리’ 또는 ‘그 석상(席上)’이란 뜻이다. 시간적인 조건이나 제한이 없는, 필요한 일이 있는 그 때 또는 당면한 지금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좌예금은 필요하면 당장에라도 인출할 수 있는 ‘당장예금(當場預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통장(通帳)은 은행에서 예금 입출금을 기록하는 장부인데, 은행원들에게 왜 ‘통장’이라 하는지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알고 보면 쉽다. 通은 ‘왕래하다’ 또는 ‘왔다 갔다 하다’는 뜻이니, 통장은 ‘가지고 다니는 장부’란 뜻이다. 인터넷뱅킹이 일상화된 요즘은 은행 거래에 통장을 꼭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통장은 은행거래에 필수품이었다. 거래 내용을 기록할 목적으로 가지고 다니도록 만든 장부이기에 ‘통장’이다. 그러면, 가지고 다니지 않고 집에 놓아두는 장부는 ‘치부책(置簿冊)’이나 ‘치부장(置簿帳)’이라 할까,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백지수표’나 ‘백지어음’이 무슨 말인지 생각해 보자.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白紙와 白地란 낱말이 나온다. 글자가 다르니 뜻도 당연히 다르다. 白紙는 흰 빛깔의 종이, 아무 것도 쓰지 않은 종이를 말하고, 白地는 농사가 안 되어 거둘 것이 없는 땅, 또는 정해진 근거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무언가를 통째로 주거나 맡길 때, 백지위임장(白紙委任狀)을 준다고도 하는데, 백지위임장은 위임자의 이름만 써 놓고 다른 것은 백지(白紙)상태로 두어 받는 사람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한 위임장이다. 시험 때, 학생들이 모두 짜고 답안지에 답을 쓰지 않고 그냥 내는 것은 백지동맹(白紙同盟)이다. 종이에 아무 것도 쓰지 않은 상태, 어떤 사물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상태, 어떤 사물에 대하여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상태는 백지상태(白紙狀態)라 한다.

백지수표(白地手票)는 수표 요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비워 두어, 후일 소지자에게 그것을 완성하도록 권리를 준 수표다. 또, 어음 발행자가 어음 소지인에게 금액․지급지․만기 등 어음 요건의 전부 또는 일부의 보충권을 부여한 어음은 백지(白地)어음이다. 백지위임장의 ‘백지’는 白紙고, 백지수표의 ‘백지’는 白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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