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금융계 / 백성진 편집위원]

바뀌고 변해라, 근본은 국민인 소비자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대한민국에 새로운 계층이 만들어졌다.
바로 `신용불량자`들이다.

   
백성진
월간 금융계 편집위원
금융소비자협회 사무국장
빚을갚고싶은사람들
공동대표
금융정책연구원 이사
한 때 공식적으로 550만 명을 돌파했던 신용불량자는 숨기기(공식집계 폐지 등) 및 명칭 변경(금융채무불이행자), 금융사의 꼼수인 기금조성, 금융사의 배만 불리고 빚으로 쓰러져가는 채무자를 한번 더 쥐어짜는 이상한 정부 정책 등으로 수치상으론 200여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나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새로운 계층 "금융소외자"가 대거 양산되면서 사실상 기존의 신용불량자와 다를 바없는 사람들이 무려 850여만 명을 넘고 말았다. (사실 새로 양산된 금융소외자는 어떻게 보면 기존의 신용불량자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대부업 이용이은 가능한 새롭게 양산된 금융소외자들은 정책적 피해자인 기존의 신용불량자보다 더 심한 추심의 나락과 금융사의 횡포 속에서 구제도 어렵고 도덕적 해이 등의 사회적 돌팔매 속에 복잡한 상황이 뒤엉킨 악성 채무 떨어지게 되었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가장 큰 시간폭탄인 부동산과 연대보증의 그물까지 뒤덮이면서 선뜻 손을 델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통상적으로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제1금융권인 시중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850여만 명 돌파하면서 사실상 경제 활동인구의 1/3이 39%의 고금리를 사용해야만 하는 기형적인 금융시스템이 안착 돼 버린 것이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여신을 풀어 소비활성화 대책을 통해 내수시장을 살리는 방식으로 어려운 상황을 돌파했던 정부 정책은 결과론적으로 국민을 신용불량자로 몰아갔고 그 주흥글씨를 바탕으로 금융사 살리기를 통해 전 세계가 놀라워한다는 IMF 졸업장을 빠른 시간 안에 따내고 말았다.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일정부분 이해할 수도 있고 그런 선택이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 대책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으로 유추해본다면 애초에 이후 대책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룬 IMF 졸업장이라는 결과물이 일정부분 희생과 의무를 다한 국민들에겐 조금도 돌아가지 않고 금융사와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그 후의 과정 역시 정부가 나서서 국민이 희생하는 판을 만들고 금융사와 대기업만이 과실을 따가는 상황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신용불량자의 피와 땀으로 얻어낸 반짝 성과물을 통해 금융규제 등의 안전한 연착륙이 아닌 성장이라는 숫자에 눈이 멀어버린 위정자들은 부동산 규제 완화, 투자 활성화 등 금융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통한 규제 또는 관리가 아닌 철폐로 정책 방향을 틀어버리면서 과소비가 아니면 유지가 되지 않는, 누군가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 정글의 법칙을 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 이 사회의 850만 명 이상의 경제 인구는 제1금융권인 시중 은행 이용에 어려움을 갖고 있다. 또한 전 세계를 통틀어 유래가 없는 만큼 경제 인구 대비 가장 높은 대부업 이용 비중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지금의 잘못된 금융시스템 내에서는 모든 재화가 금융사로 쪽쪽 빨리기만 하고 있다. 노동력 착취를 통해 발전을 했던 70, 80년대의 경우엔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을 뿐이지만 일한만큼의 돈을 벌수는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더 벌 수 있었지만 그걸 주지 않았기에 착취이고 희생의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은 뭘 해도 어렵기만 하다. 중간에 앉아있는 금융사가 모기마냥 다 빨아먹고 있는 것이다.

금융채무불이행자 문제를 떠나 키코, 재건축, 재개발, 저축은행, 파생상품, 카드가맹수수료 등등 잘못된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365일이 부족할 것이다. 거기에 복지마저도 대출로 해결하려는 얄팍한 정부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다수의 문제의 근본은 잘못된 금융시스템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낙오를 해야 하고 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돌려서 말한다면 누군가의 성공은 누군가의 실패라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과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정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경우엔 성공한 많은 사람들 중에 다수는 국가적으로 특혜를 받은 경우도 많기에 더 많은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당신이 쓰러졌을 때 버려진다면 그냥 부속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재기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라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사회 분위기와 안착된 금융시스템은 무한발전의 시작이 분명하다.

이미 850여만 명 넘어버린 금융소외자에 대한 해결이 채무자 우호적이며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가 이나마 버틸 수 있는 건 어쩌면 희생양이며 우리 사회 체제에서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낙오자들의 피와 땀이다. 무한 경쟁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서라도 당연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신호인 것이다.

미국 시스템이 좋다고 단언할 수 없다. 또한 금융시스템 역시 좋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 사회의 근간이 되는 것이 기회의 평등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단적인 예가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처럼 수익이 나지 않는 기업에 투자가 이뤄질 때 투자사들은 몇 년간의 운영비까지 함께 투자를 한다. 수익이 나지 않는 걸 알고 미래가치에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투자가 아닌 투기가 근간이다. 아이디어가 좋아도 당장 필요한 몇 푼만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어떻게든 지분을 더 가져가려고 목만 조이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 사회에 어떤 금융이 도움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위해서라도 금융소외자는 구제 돼야 하고 채무 조정은 채무자 우호적으로 변해야 한다. 또한 금융시스템은 국민인 소비자 위주로 변해야 하는 것이다.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원한다, 또한 다수의 사람 역시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에 대하여 지원을 하는 이유는 살리기 위해서이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국민에게도 지원을 해서 살려라! 국민이 없으면 국가가 없듯이 소비자가 없으면 기업도 없다. 마찬가지로 금융사도 없고 금융도 없다. 근본은 국민이며 소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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