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금융계 / 이보우 편집위원]

통곡의 벽

 

   
이보우 편집위원
(현) 월간 금융계 편집위원
(현) 단국대 경영대학원
신용카드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베이징대학 경제학 박사
여신금융협회상무이사
한국신용카드연구소 소장
한국신용카드학회 부회장
말문이 막힌다.
어이없는 세월호의 침몰을 보면서다. 슬픔보다 분노가 앞선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비슷한 대형 사고를 여러 차례나 겪었다. 1993년도에는 서해 여객선 침몰로 292명의 희생자를 냈다. 이듬 해엔 성수대교가 무너져 32명을 잃었고, 그 다음 일년 후에는 백화점 붕괴로 502명이 사망했다. 2003년에는 대구 지하철 사고가 192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지난 달 진도 앞바다에서 속수무책으로 수많은 인명을 잃었다.

이번 참사는 근본적으로 인재다. 안전관리 시스템의 미비에다 이를 실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무책임의 소치다. 게다가 비용을 줄이려는 무리한 운행과 안전을 소홀히 한 부실경영, 종사자들의 시민의식 실종과 직업윤리의 결여가 희생을 더 키웠다. 사고 후 구조과정에서 정부도 대응도 오락가락이었다.
결국 우리사회의 안전시스템의 구조적인 오류와 치부가 드러난 사고다. 가히 갑오년의 국치(國恥)다.

제국주의 시대에 힘이 모자라 나라를 내준 게 경술의 국치였는데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현대국가에서 백주에 수백 명의 생명이 걸린 사고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면 국가적 수치다.

이러한 수치스러운 사고의 원인으로는 단기간에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채 성장이 우선이 되고 실적과 외형은 비대하여진 데 반하여 정신적 가치와 문화적 역량이 미쳐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에서 찾기도 한다. 말하자면 사회적 소프트의 형성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고의 경우는 다르다. 십 수년 전에 일어난 같은 유형의 대형사고가 되풀이 발생하는 건 일종의 망각 병이다. 무엇인가를 쉽게 잊어버리는 그런 병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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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은 천 년을 지난 오늘에도 로마 군인에 의하여 동족들이 살해된 통곡의 벽(wailing wall) 앞에서 기도를 한다. 무한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국가의 비극이나 민족의 치욕은 잊지 않는다 한다.
진도 해안 어느 곳에 우리의 통곡의 벽을 쌓았으면 한다. 인양한 세월호의 실물은 가운데 놓았으면 한다. 그곳이 직무를 버린 무책임이 가져온 처절한 비극과 치욕을 잊지 않고 안전을 기원(祈願)하는 성전이 되었으면 한다.
그 곳에 희생된 안타까운 영령들의 추모비도 세웠으면 한다.
그 뒷면에는 저 혼자 살려 달아난 사람들 이름도 새겨두어야겠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들의 무책임은 잊혀질 수 없다고, 잊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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