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금융계 / 백성진 편집위원]


사고의 전환

 

   
백성진
월간 금융계 편집위원
금융소비자협회 사무국장
빚을갚고싶은사람들
공동대표
금융정책연구원 이사
세월호가 세월의 흐름 속으로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물론 아직 해결된 것도 변한 것도 단 하나도 없지만….

세월호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있는 5월의 끝자락에서 우린 벌써 몇 차례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지하철, 화재 등등 정말 국가적으로 굿판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올리히 벡은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라는 책을 썼다. 근대성에 대한 주제로 사회과학 분야임에도 출간된 지 5년 만에 6만 권이 넘게 팔렸다. 분류도 그렇지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도 무거운데 경이로운 판매라고 생각한다. 더욱 눈여겨볼 건 우리가 흔히 아는 대중적인 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말 대단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폭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당시 책 판매량의 이유는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에 하나인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구소련이라는 폐쇄된 국가에서 일어나면서 폭발 이후의 상황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그 위험성 역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체르노빌 사고의 위험성은 어이없게도 무려 1,500km나 떨어져 있는 스웨덴에서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타나면서 그 위험 신호가 울리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핵에 대한 위험의 신호는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유럽은 말 그대로 핵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핵미사일이라는 단순한 물리적 위협을 넘어 전쟁이 아닌 우리 일상에서 핵 위협이 찾아올 수 있다는 공포가 유럽 전역을 뒤덮은 것이었다.

위협, 위험의 공포가 커지면서 당시 유럽 사회의 결론은 사고의 전환이었다. 직접적인 핵에 대한 경각심과 근본적인 에너지원에 대한 물음, 더 나아가 지구 생태계와 환경, 먹거리에 대한 고민 등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의 과정 중에 올리히 벡의 ‘위험사회’가 근대성을 주제로 유럽 사회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사고의 전환의 한 틀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문명, 부, 사회적 불평등, 개인주의, 지위, 계급, 노동, 진리, 계몽, 과학, 정치……. 생존과 직결된 어찌 보면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통한 사고의 전환이 현재 유럽의 사회, 정치, 문화의 장점들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한다.

유럽에서 사고의 전환이 될 수 있었던 비슷한 경우를 우리도 불과 3년 전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경험을 했다. 다행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위험 및 신호가 아직은 없지만(제발 그런 위험 및 위험 신호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체르노빌 사고와 유럽과는 달리 후쿠시마는 한국과 불과 9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또한, 체르노빌의 경우엔 수습 과정은 25년의 세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이라는 강력한 국가의 통제 속에 강제로 해결을 했지만 일본의 경우는 무책임하고 한심해 보일 정도였다. 핵의 공포나 위험성은 분명 우리가 더 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우리나라는 사실 큰 변화가 없었다. 아니 없다. 심지어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소식도 간간히 있었음에도 안전 불감증을 넘어 안전에 대한 인식, 위기의식 자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그냥 일상다반사인 것이다. 핵에 대한 경감식조차 없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도 위협이 아닌 가십거리로 여기는 풍토이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대인의 풍모를 가졌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의식 수준의 문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위험’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가 유럽 전역에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 냈지만, 우리나라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한 인식 부족은 결국 세월호로와 같이 비슷한 사건, 사고의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번 인재다 뭐다 말을 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사건, 사고의 연속일 뿐 전혀 변하지 않고 그렇게 저렇게 어이없게 사람들만 죽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위험사회’라는 어쩌면 하품만 나오는 책이 당시 유럽 사회에 던진 화두가 결국엔 근본적인 질문과 해답을 만들어냈고 현재 우리가 일이 터졌을 때만 안타까워하는 슬픈 사건, 사고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뒀으면 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론 굉장히 안전한 사회이다. 치안도 훌륭하고 일반적으로 공권력도 문제없다. 하지만 사건, 사고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무기력하다. 재해 수준의 사건, 사고뿐만 아니라 금융 시스템상의 사건, 사고 역시도 마찬가지다. 기억이나 제대로 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개인신용정보 문제로 얼마 전에 난리가 났었지만 이젠 모두가 일상다반사로 돌아왔다. 심지어 TV에서는 공익광고를 통해서 개인정보 관리 잘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금융사이고 금융당국이었음에도 말이다. 사건, 사고뿐만 아니라 우리는 진정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5.29), 자신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학생증을 목엔 건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부모가) 자신을 쉽게 찾기 하기 위해 그 막막한 마지막 순간에도 이렇게 학생증을 목에 걸었다”며, “효자”라고 오열하는 부모님의 멘트와 함께…….

잊지 말아야 한다. 팽목항에는 아직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이제는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오늘 내 일이 아니었다고 내일도 내 일이 아니라고 기대하는 건 무책임이 아닌 범죄행위라는 것을…. 우리가 함께하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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