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금융계 / 이보우 편집위원]

주홍글씨 실험

 


   
이보우 편집위원
(현) 월간 금융계 편집위원
(현) 단국대 경영대학원
신용카드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베이징대학 경제학 박사
여신금융협회상무이사
한국신용카드연구소 소장
한국신용카드학회 부회장
시중은행들은 하루 영업을 하고 자금이 남으면 보통 중앙은행에 예치해서 이자를 받는다. 하루라도 자금을 놀리지 않으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역내 은행들의 초단기예금에 이자를 붙여주지 않고 오히려 수수료를 물도록 한 것이다. 이 조치는 어떻게 하더라도 중앙은행에 예치하지 말고 가계나 기업에 빌려주어 소비하게 하거나 기업에 대출하여 투자를 늘리려는 목적이다. 경기가 지지부진하여 시중에 돈이 남아 돌고 있다 보니 전에 없던 파격적인 부양조치를 취한 것이다. 가히 ‘역사적 실험’이다.
미 연방준비은행(FRB)의 양적 완화(Quantity Easing)도 비슷한 경우다. 전통적으로 경기침체기에 돈을 푸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위험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번처럼 장기간 많은 양의 공급은 처음이다. 역시 경기부양을 위한 ‘금융실험’의 하나다.
우리 금융당국이 도입한 금융회사에 대한 ‘빨간 딱지제도’도 가히 감독의 ‘새 실험’이다. 우리 회사는 이렇소 하고 빨간 딱지를 목에 걸고 영업을 하게 하는 제도이니 그렇다는 말이다.
‘딱지제도’는 금융회사에 생기는 민원을 평가하여 매긴 등급을 점포에 게시하도록 하는 조치다. 고객들이 드나들면서 매일 그 딱지를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금융회사에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목적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같은 내용을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3개월간 공시하고 팝업공지도 한 달간 하기로 지도한다.
필요한 경우 감독당국의 행정지도는 당연하다. 다만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부작용에 대한 검토도 선행되어야 옳다. 이러한 과정을 소홀히 하고 도입된 ‘붉은 딱지’는 해당 금융회사를 거래 안정성이 떨어지는 회사로 낙인을 찍고 부실 회사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취지가 오히려 다수 고객에게 불신을 심어주는 ‘주홍글씨(scarlet letter)’로 변질이 된 것이다.
다행히 한달 만에 영업점의 딱지부착은 철회되었다. 소비자의 권익은 온전한 절차와 방식을 거쳐 옹호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막무가내의 실험을 ‘지도’의 이름으로 강제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FRB나 ECB가 시행하고 있는 통화공급 실험의 성패는 더 두고 보아야 할 테지만 “빨간 딱지’ 실험은 실패로 드러났다.
향후 홈페이지 초기화면 공시나 팝업공지도 대안을 찾았으면 한다. 정책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은 더 나은 성공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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