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보우 편집위원

(현) 월간 금융계 편집위원 /  (현) 단국대 경영대학원 신용카드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베이징대학 경제학 박사 / 여신금융협회상무이사한국신용카드연구소 소장 / 한국신용카드학회 부회장

평소 알고 지내던 H일간신문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금융관련 사안이 있을 때면 의견을 자주 나누는 사이다. 이번에는 선불카드에 관한 일이었다.  가전업체 모뉴엘의 거짓 신화를 가능하게 한 로비에 이 카드가 이용되었으니 차제에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금융상품이 뇌물수단이 되었으니 의당 규제가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선불카드(pre paid card)는 현금을 먼저 지불하고 그 액수만큼을 카드에 적립하여 사용한다. 현금을 가지고 다닐 불편을 덜기도 하고 서명을 하는 신용카드가 없는 이들에게 유용하다. 선물용으로도 이용되기도 하여 흔히 선물카드(gift card)로 불리기도 한다. 이용한도는 한 장당 기명이 5백만 원, 무기명은 50만원으로 제한되어 있다. 로비 등 부정하게 사용되거나 음성적 거래를 막는 장치다.

그 기자는 부정한 금융상품은 한도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없애버리면 어이 없는 금융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뜻이었다.  필자는 5만원 지폐가 로비로 사용된다 하여 그걸 없애자는 것이나,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빈발한다 하여 그 길을 아예 막아버리자는 아이디어와 진배 없는 게 아니냐고 웃어넘겼다.
 
핀테크(finteck) 산업을 키우기 위하여 인터넷은행 설립이 허용될 모양이다. 스마트폰 등의 기술(technology)로 금융(finance)서비스의 제공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다. 인터넷 은행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설립이 논의되었지만 기업이 은행의 지분을 4% 이상 가질 수 없도록 한 ‘은산(銀産)분리’ 규정 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에도 지분문제는 종전 그대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산 분리 규제는 기업이 은행지분을 과다하게 소유하게 됨으로써 기업의 사금고가 되는 걸 막는다는 목적이다. 미국에서는 기업의 은행지분 소유한도는 25%다. 독일에서는 대주주가 적격인지 여부만을 심사로 대신한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에서는 한도제한이 없다.
 
은행이 공룡기업의 수중에서 자금창구 역할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어렵게 하고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반세기에 가까이 된 고착한도를 고집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 ‘기자’와 같이 규제의 프레임에 갇혀있다. 기업 환경이 개벽이 되고 정보통신 기술은 대변혁을 거듭하는 사이에서도 지난 규제의 틀 안의 사고에 갇혀있다. 금융당국과 CEO 십 수명을 동원하여 ‘막장 토론’을 한다는 등 법석이다. 없는 것보다는 나은 행사일지 모르지만 그런 전시(demonstration effect) 보다는 알맹이에 대한 창조적 접근이 더 필요하다. 돈을 푼다(quantity easing)하여 인플레를 걱정하는 시대는 이미 아니다. 인터넷 은행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려면, 금융산업을 글로벌로 키우려 한다면 은산 분리구조부터 혁파하라. 당장. 기업이 금융을 삼키기보다 공생하는 시대다.
 
 

저작권자 © 금융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